글
2017. 4. 10. 02:52
[태재] 우주선착장 1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크게 숨을 들이 쉰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먼지와 퀴퀴한 냄새가 코 벽에 달라붙었다. 돌아눕자 형광등에서 밝은 빛이 붙인 눈 사이를 가르고 들어왔다.
재현아....
"재현아...."
재현아....
벌써 너의 이름을 세번을 불렀다.
공중을 떠도는 나의 침대가 우주로 뛰쳐나가려고 한다. 간신히 침대를 12미터에 안착시켜놓은 내가 작은 상자로 침대를 둘러쌓았다. 시멘트로 답답히 쌓아놓은 침대 상자는 유일한 우주의 연결지다. 이 시멘트들을 무너뜨린다면 나는 언제든 우주로 떠날 것이다. 반죽해놓은 시멘트 위를 꿀렁이며 유영하는 나의 작은 배가 옆으로 기운다. 시멘트 안으로 침몰하는 나의 배가.
-
도어록 따윈 사치라고 느껴지는 작은 빌라에서 소화기로 내려치면 부서지는 가냘픈 문고리를 잡았다. 또 덜렁이는 문고리에 열쇠를 억지로 구겨 넣었다. 또 돌아가지 않는 열쇠에 애를 먹었다. 일층에 있는 십년 째 방치되고 있는 소화기를 들고 올까 생각했다. 원래는 모텔로 쓰이던 건물이라 속이 비어있는 소화기와 12개나 있는 열쇠는 일층에 전시되어있다. 일이나 학교때문에 억지로 거래를 한 사람들에겐 이미 도어록을 달아주어서 일층에 전시된 열쇠들은 사람들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그 열쇠를 쓰는 것은 304호 한 집뿐이었다. 그 집이 나의 집인 건 나만 아는 비밀이다.
"다녀왔습니다."
답이 없는 집 안을 가득 채운 냉기가 폐부로 들어찼다. 겨울은 이래서 싫다. 밖에 나가도 돈이 들고 집에만 있어도 돈이 드는 일이 가득하다. 수도관은 얼어서 물은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물을 마지막으로 틀은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된 밥도 먹은지 오래되었다. 나의 시멘트 상자 안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원래 이 집에 들어왔을때 침대가 공짜라는 꼬임에 넘어가 들어왔지만 이틀 동안 그 침대 위에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이 침대 위에서 몇 명이 떡을 쳤을까. 그들이 에이즈에 걸리진 않았을까. 그 중 누군가는 아직도 만나고 있을까. 그 사람들 중 누군가는 이 침대 위에서 쾌락을 좇고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했을까.
그 침대는 딱 이틀 쓰고 버렸다.
나의 배 위로 몸을 뉘었다. 씻는 것도 이 집에선 하지 않았다. 다시 시멘트 위를 유영하는 나의 작은 배. 돛은 이미 내가 배를 올라탔을 때부터 찢어져있었다.
-
재현아. 네가 사랑했잖아. 내 존재를 잊지 말아줘. 너의 인생에 내가 남아있길 바래.
재현의 짧은 인생 사이에 내가 낀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의 일상은 매일 거처를 옮기며 배를 타고 떠돌이 생활을 하던 도중 우연히 만난 우주정거장이었다.
"안녕."
"그래 안녕. 넌 왜 여기 앉아있니?"
"갈 곳이 없어. 나 좀 데려가."
꽤나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오른쪽 눈썹을 긁적이며 한숨을 쉬었다. 삼분동안 서로를 보기만 했다. 그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분명 나에게 어떤 신호를 주었고 그 신호를 내가 받아들인 것이다. 쪼그려 앉아있던 다리를 펴고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신발은 일찌감치 발에 남아있지 않았다. 밑이 다 헐은 회색 양말을 현관에서 벗었다. 그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문을 하나 가리켰다.
"일단 먼저 씻을래?"
고개를 끄덕이고 현관 바로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양말을 집어던졌다.
흥얼거리며 체온보다 살짝 높은 물로 몸을 씻어냈다. 2주 전 우연히 착륙한 지구의 첫 번째 나라에서 언뜻 들었던 멜로디를 코로 흥얼거리며 비누를 문질러 거품을 만들어냈다. 머리 위로 살포시 얹은 흰 거품이 물에 녹아내려갔다.
-
아아아아악.
끼요오오옷.
파지지지직.
살려주세요!
쿠콰가가강.
퍼버버버벅.
툭.
-
요란스럽게 천둥번개가 하늘을 울렸다. 어쩌다 지구에 상륙하게 되어버려선 신경질 가득한 일만 가득했다.
'걔는 왜 그랬다니?'
'몰라. 왜 번개치는 날에 역 옥상에 올라갔는지.'
실없는 소리만 가득란 머리 속을 잡시 접어둔다.
-
모두 꿈을 꾼다. 그것이 누군가를 향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얼추 이성과 본성의 경계. 그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뛰어다니는 내가 보인다.
"이름이 뭐니?"
"모르겠는데."
"뭐라고 불렸니."
"누가 날 불러 본 적 없어."
"내가 널 뭐라고 불러야하니."
"모르겠어. 나중에 생각나면 말해줄게."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는데 이곳이 지구라는 것만 알 뿐 난 어느 지역인지도 모르고 어느 지역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말은 지역에 따라 언어가 달라진다는 것이 나의 2주간의 지구생활의 깨달음이였다. 지금은 나의 언어가 뱉는 소리만 가득한 체계라는 것만 알았다. 내가 가는 곳마다 말은 다르게 나오고 나의 마음을 대변할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리고 나의 모습도 바뀌었다. 우주에선 행성을 피해다니는 작은 먼지로 소행성들을 따라다녔다. 처음으로 상륙했던 곳에선 인간의 모습이지만 지금의 모습관 많이 달랐다. 목욕을 하다가 알아낸 것인데 지금은 새카만 머리카락에 까맣고 큰 눈동자를 가졌지만 이전에는 금발에 청색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의 나는 여자였다.
그리고 나의 이름은 없다.
-
"재현이니?"
현관을 열고 들어 온 것은 바로 앞 빌라 옥상에서 매일 마주치던 검은 털과 흰 털이 섞인 고양이였다. 문은 원래도 잠가놓지 않아서 어떤 사람이 들어와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부수고 훔쳐가도 별다른 예방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지구상에 나의 흔적이 사라지면 그때 나는 다시 유성우를 따라 여행을 떠날 것이다.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삶이 먼지같이 작아서 더 이상 부서질 수도 없는 작은 인생이 너무 안타까웠다.
“야옹아. 어쩌다 들어왔니...”
다음으로 갈 곳이 생긴다면 고양이로 변해 길에 나도는 고양이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고양이를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굳이 된다면 사람의 모습보단 고양이가 되어 세상을 떠돌고 싶다. 다음 나라로 갈 땐 고양이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고양이들 사이로 끼어 살 것이다.
재현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리 어렵진 않았다. 집 앞에 있는 사람을 자신의 집으로 막 들이는 병신 같은 착함 탓에 벌써 재현의 인생 사이로 내가 흘러 들어간 것이다. 사람이 먼지가 되어 다시 우주로 떠밀려 올 때 모두가 신경 쓰지 않는 작은 먼지로 밀려난다. 유성우를 따르다 우연히 지구에 착륙해버린 나완 달리 밀려온 먼지들은 각기 자신만의 부유물들을 끌어안으며 암흑으로 사라진다.
애옹애옹거리는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썩 듣기 좋진 않았다. 한 뼘 정도 열린 문을 활짝 열고 고양이를 들어 올려 밖으로 내보냈다. 계단을 한 칸 내려가더니 그대로 주저앉아 머리를 괴었다. 고개를 돌려 현관문을 다시 쳐다보았다. 다시 들어가도 되냐는 물음 같아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고양이가 다시 머리를 괴었다.
“좀 가...”
오늘이 유독 피곤하다. 모든 것이 피곤하다. 곤두설 신경들이 다 죽어 문드러진 것 같다.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민오/맠재] 어른이 되면 (0) | 2016.10.20 |
|---|---|
| [재른]나의 벚꽃잎 (0) | 2016.09.16 |
